위풍당당 그녀의 넉넉한 인생 요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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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당당 그녀의 넉넉한 인생 요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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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할 거 없어요. 그냥 집에서 해 먹는 음식들인데 뭐. 그래도 손님들 오신다기에 간단히 차려봤어요.” 

‘간단히’라는 말과는 달리 식탁에는 음식들이 계속 올라온다. 오늘의 메인 요리인 콩나물굴밥 외에도 손이 많이 가는 잡채와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제대로 국물을 낼 수 있는 육개장, 먹음직스러운 브로콜리볶음까지 푸짐하게 한상이 차려진다. 7남매 집안의 큰며느리로 제사상을 비롯해 수십 여 명 대식구의 식사를 책임지던 이호순(77) 할머니에겐 이 정도면 간소한 상차림이다. 게다가 요즘엔 나이를 못 속이는지 체력 도 달리고 입맛도 무뎌져 음식하기가 예전 같지 않다. 하지만 손수 차려낸 음식을 가족들이 맛있게 먹으면 여전히 행복한 그녀다.

고학력 여성이 드물던 시절, 요즘의 식품영양학과라 할 가정학과를 졸업한 이호순 할머니는 일찍이 요리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일식, 중식, 한식을 아우르는 내공이 이를 여실히 증명한다. 일식은 일본에 사시던 친정엄마를 통해 배웠고, 중식은 예전에 중식 요리사를 초빙해 풀코스로 익혔다.

 

“말린 해삼이 선물로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아무리 삶아도 안 불어 나고 중국집에 물어봐도 안 알려주더라고. 그래서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을 모아 아예 중국 요리사를 불러서 직접 배워보자 했죠. 요리사 선생님이 알려준 대로 해삼 힘줄을 끊고 삶으니 잘 불어나더라고요.”

 

주저하지 않고 습득한 노하우와 경험들은 모두 그녀의 요리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특별한 것 없어 보이는 콩나물굴밥도 이호순 할머니표 콩나물굴밥은 조금 다르다. 쌀을 안칠 때는 들기름을 몇 방울 떨어뜨려 구수함을 더하고, 보통 뜸을 들일 때 굴을 얹어 익히는 것과 달리 생굴을 그대로 밥 위에 올려 먹어 신선한 굴향이 더 진하다. 간편하면서도 영양만점이어서 자주 해먹는 브로콜리볶음에도 그녀만의 사소하지만 유용한 팁이 담겨 있다. 대부분 질긴 브로콜리 줄기는 잘라내는 반면 그녀는 섬유질 등의 영양가가 많은 줄기까지 알뜰히 조리해 먹는다.

“브로콜리 줄기는 껍질을 벗겨서 송이와 같이 볶으면 부드러워져요. 볶을 때 전분 가루를 넣어주면 점성이 생겨서 양념이 잘 엉겨 더욱 맛이 좋아요.”

마지막으로 손이 큰 그녀답게 통깨를 한 움큼 크게 집어 뿌려주면 요리가 완성된다. “깨는 한식에서 화장품이에요”라며 곱게 치장한 요리는 맛과 영양은 물론 모양도 먹음직스러워 절로 군침이 돌게 한다.

 

마음 가는 대로, 마음먹은 대로

 

음식에 일가견이 있다고 해서 살림에만 매달린 건 아니었다. 일본에서 사업으로 크게 성공한 아버지가 한국에 세운 공장을 그녀가 맡아 운영을 해왔다. “사실 부모님은 도망가다시피 일본으로 건너간 거예요. 아버지가 역무원이셨는데 그 당시 젊은 사람들에게 공산주의 이론이 얼마나 좋아 보였겠어요. 사상 때문에 동네 사람들끼리 서로 공격하고 밤에 몰래 집에 들어와 죽이는 일까지 있었으니 어린 나를 두고 멀리 일본으로 가실 수밖에 없던 거죠.”

 

경남 함안의 할머니 손에 맡겨진 그녀는 역사의 격랑 속에서도 씩씩하게 자랐다. 혼란스러운 시대였지만 대범하고 당찬 성격의 그녀는 아내이자 엄마, 또 제조공장의 운영자 역할까지 모두 굳건하게 해냈다. 현재 중국으로 옮겨간 공장은 그녀의 큰딸이 맡고 있다. 큰딸의 첫째 딸, 그러니까 이호순 할머니의 큰 손녀는 그룹 2NE1의 리더인 가수 씨엘(CL)이다. 격세유전이라고 했던가. 흥이 많고 당당하게 삶을 즐기는 할머니의 면모를 물려받은 손녀는 현재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 중이다.

 

그녀가 손녀 씨엘에게 항상 당부하는 말이 있다. “누가 뭐래도 즐기면서 당당하게 자신감을 가지고 해.” 일찍이 부모와 떨어져 홀로 꿋꿋이 인생을 개척해온 자신에게 되뇌던 주문을 이제는 타국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손녀에게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한평생 자신감 있게 살고자 했던 노력은 ‘하고 싶으면 해 보자’라는 좌우명에서 잘 알 수 있다. 하고 싶은 건 주저하지 않고 도전하고 배워 중국, 일식, 한식을 넘나드는 요리 내공을 갖게 되었으며 많은 곳을 여행하며 다양한 경험도 쌓았다. 또한 그림도 수준급이다. 식물 키우기, 뜨개질, 일본어도 빼놓을 수 없는 취미로 그녀는 그야말로 ‘취미 부자’다. 30여 년 전부터 터를 잡고 살고 있는 서울 자곡동 집에는 그림 작품과 화분 등 취미의 흔적들이 가득하다.

 

최근 그녀는 또 새로운 일을 벌였다. 막내딸의 제안으로 책을 내게 된 것. 딸이 기획을 맡고 딸의 친구들이 십시일반으로 사진이며, 디자인, 편집 등을 담당한 책의 제목은 《맥시멀리스트 이수산나호순의 인생 레시피》이다. 수산나는 그녀의 세례명이고, 맥시멀리스트(Maximalist)는 무언가를 배우고 즐기며 자신의 이야기를 증식해나가는 그녀에게 잘 어울리는 수식어이다. 이호순 할머니가 맥시멀리스트가 된 이유는 타당하다. 넘치는 열정과 충만한 자신감으로 가족은 물론 주변 지인들에게까지 긍정 에너지를 전해주기 위해서가 아닐까.

 

요즘은 간결한 삶을 추구하는 미니멀리스트가 대세라지만 이호순 할머니와 같은 이유라면 기꺼이 맥시멀리스트가 되고 싶다. 사랑, 열정, 자신감, 용기가 차고 넘쳐 위풍당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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