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읽다] 삶을 기억하고 기록하다 / 오동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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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영화를 읽다] 삶을 기억하고 기록하다 / 오동진, 영화평론가
  • 출판사월간에세이
  • 잡지명월간에세이 Essay

영화 <미나리>는 왜 미나리일까. 무엇의 은유일까. 영화에서 할머니 순자(윤여정)는 손자 데이빗(앨런 S. 김)을 데리고 나가서 미나리를 심는다. 미국에서 ‘깡촌’으로 불리는 아칸소에서. 할머니는 미국 땅에서 미나리 씨를 뿌리며 손자가 미나리처럼 쑥쑥 아프지 않게 자라기를 바란다. 데이빗은 심장이 약한 아이다. 이 영화는 우리(특히 아버지 세대)가 겪어야 했던 척박한 인생을, ‘척박하게’ 그리는 것 같아도 그 안에 담긴 가족주의와 따뜻한 인간관계를 펼치고 있다. 어느 쪽을 더 비중 있게 보느냐에 따라 영화에 대한 시선은 달라진다. 일상은 늘 폭력적이지만 그 안에도 인본(人本)적인 무엇이 삶을 견디게 한다. 일상의 폭력성을 무시하고 사는 것도 철없는 짓이다. 그렇다고 휴머니즘의 가치를 못 알아채는 것도 삶의 동력을 잃게 만든다. 이 둘에 대한 인식은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같은 것이다. 

<미나리>는 정이삭(미국명 리 아이삭 정)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이다. 그는 한국계 미국인 3세로서 자신의 전 세대가 어떤 일을 하고, 또 겪으며 살았는지를 전한다. 무엇보다 전전(前前) 세대인 할머니가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이민자로서의 고립된 삶 속에서 자신에게 무엇을 남기고, 어떤 정체성을 부여하고 갔는지를 기억하고 기록한다. 그 과정이 매우 눈물겹지만, 이를 ‘눈물의 카타르시스’로 과장되게 분출시키지 않는다. 제이콥(스티븐연)과 모니카(한예리) 부부의 애증도 선을 넘지 않는다. 할머니의 손자 사랑도 지나치게 유별나 보이지 않는다. 그 톤앤매너가 좋다. ‘미국식으로’ 개인주의적이거나 냉정하지도 않으면서 ‘한국식으로’ 다분히 요란을 떨지도 않는다. 

<미나리>는 여러 영화에서 레퍼런스를 가져왔지만, 매우 독창적이라는 점에서 찬사를 이어가고 있다. 일단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데어 윌 비 블러드, There will be blood>(2007)의 서사 구조와 맥락이 유사하다. 이 영화는 주인공 대니얼(다니엘 데이 루이스)이 캘리포니아의 한 작은 마을 리틀 보스턴에서 홀로 유전을 캐며 지옥의 삶을 살아가는 서사를 다룬다. 그의 어린 아들은 정신적으로 ‘약간’ 아픈 아이인 데다가 친자식도 아니지만, 나름 애지중지하며 키운다. 후계자이기 때문이다. <미나리>에서도 제이콥은 아칸소 시골에서 한국 채소 농장을 만들겠다며 ‘열일’을 한다. 그는 미국에 한국인이 점점 많아지기에 신선한 한국 음식 재료를 찾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의 작물은 댈러스와 덴버를 넘어 캘리포니아까지 팔리는 기회를 맞는다.  

대니얼과 제이콥은 자력으로 모든 것을 해낸다. 대니얼은 유전을 직접 캐고, 제이콥은 우물을 직접 판다. 아내는 그의 야망을 이해 못 하거나 잘 믿지 않는다. 대니얼의 주변에는 폴 선데이(폴 다노)라는 광신도 목사가 한 명 나타나는데, 둘은 비극적 파국을 맞는다. 제이콥 주변에도 폴(윌 패튼)이라는 광신가 기웃대며 살아간다. 이 둘은 폭력적인 관계가 되진 않지만, 뭔가 불편하다. 제이콥은 폴이 모니카에게 종교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게 싫어도 그가 없으면 자신의 노동이 배가 되는 것을 알기에 폴의 신앙 방식을 인정한다. 이처럼 두 영화가 닮았다는 착시와 오해는 인물 배치와 관계 설정 때문일 것이다. 

<데어 윌 비 블러드>는 100년 전 이야기를 통해 미국이 얼마나 강고한 노동과 프로테스탄트적인 금욕주의, 오일(Oil)을 둘러싼 정치·사회적이면서도 폭력적인 관계로 이뤄진 나라인지를 보여준다. <미나리>는 레이건 시대(1970년 후반~1980년 초반)의 이야기로, 미국이 얼마나 혹독하고 자기희생적인 이민자의 노동에 의해 길러졌는지를 웅변한다. 둘 다 미국이 지닌 진정한 가치, ‘아메리칸 드림’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모니카는 아칸소에서의 고된 노동을 힘들어하며 자신만이라도 아이들과 캘리포니아로 가고 싶어 한다. 이에 제이콥은 “나는 여기 있을 거야. 그래서 나중에라도 아이들이 아빠가 이루려고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주고 싶어”라고 한다. <미나리>는 우회적으로, 은근히, 지금은 상실된 부성(父性)의 가치를 회복시키고자 한다. 장모 순자의 미나리 밭을 이어받는 것도 결국 제이콥이다. ‘제이콥=아버지’는 많은 일을 해낸다. 어쩌면 <미나리>는 부성의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스티븐 연을 완전히 새롭게 보게 되었다. 그는 이창동의 <버닝>에서 한국어를 더듬더듬하는 인물이었지만, 여기서는 완벽한 한국어를 구사한다. 광신도 폴 역의 윌 패튼의 연기도 이 정도일 줄 몰랐다고 할 만큼 뛰어나다. <미나리>의 아카데미 수상을 점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상이 뭐 그리 중요한가. 좋은 영화는 좋은 영화로만 그쳐도 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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