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악동뮤지션 성장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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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AY] 악동뮤지션 성장스토리
  • 잡지명빛과 소금

 
[  THE WAY  ] -  악동뮤지션
 
  악동(惡童)이 아니라 악동(樂童)이에요!  
 
 
 
    지난해 한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샛별처럼 등장한 남매가 있다. 즐겁게 노래하는 아이들이라는 뜻의 ‘악동(樂童)’ 뮤지션이다. 꾸미지 않고, 거침없으며, 맑고 밝은 두 아이는 몽골 하늘의 빛나는 샛별을 닮았다. 좋은 음악적 환경에서 정식 교육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지만, 그들의 음악은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따뜻한 힘이 있다. 그걸 가능하게 하는 건 하나님의 방법대로 사랑하고 칭찬하며 기다려 주는 부모님이 계시기 때문인지 모른다.
 

    열아홉 찬혁과 열여섯 수현. 보통 아이들 같으면 학교 시험이다, 입시다 해서 한창 시달릴 나이다. 몽골의 대자연 속에서 자라난 악동들의 특별한 성장 스토리를 만나보자.


몽골의 초원을 달리는 악동들

    찬혁과 수현은 초등학생 때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몽골 울란바토르로 떠났다. 부모님의 ‘선교 비전’을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두 남매는 너무 어렸다. 정들었던 집과 친구들을 떠나 낯선 땅으로 간다는 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
  
  언어 장벽, 외로움, 정체성의 혼란, 경제적 결핍 등 선교사 자녀들이 겪는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실제로 선교사 자녀들이 교육적·정서적·정신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례가 꽤 많다. 그러나 찬혁·수혁 남매는 어려움을 잘 견뎌냈을 뿐만 아니라, 그곳을 좋아했다. 대자연의 넉넉함이 좋았고, 가족들이 더욱 가까워질 수 있어서 좋았고, 음악을 할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 찬혁 옆에 수현이가, 수현 옆에 찬혁이가 있어서 좋았다.
 
    찬혁은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즐겁게 놀고, 자기가 맡은 일은 땀을 뻘뻘 흘리며 최선을 다해 열심히 했다. 특히 춤을 잘 추었는데, 교회 워십 댄스 동아리에서 리더까지 맡을 정도였다. 친구들 앞에서 록 밴드 흉내를 내고 춤을 추면 환호성이 쏟아졌다. 학교 성적은 그저 그랬다. 특히 몽골은 어릴 때부터 영어를 가르치는데, 그때까지 영어와 담을 쌓았던 찬혁에게 영어 시간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는 암흑의 시간이었다.
수현은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상냥하고 착한 마음씨 때문에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누구에게든 사랑을 듬뿍 받았다. 꾀꼬리같이 예쁜 목소리를 가진 수현의 꿈은 버클리 음대에 가는 것이었다. 어떤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몽골의 작은 소녀는 알지 못했지만, 결의만큼은 대단했다.

    “나는 무조건 음악을 할 거고, 무조건 버클리 음대에 갈 거야. 설령 당장 버클리에 못 가더라도 언젠가는 꼭 갈 거야.”


학교를 떠나 집으로, 홈스쿨링은 괴로워

    몽골에서 아이들이 다닌 학교는 20여 년 전 한국인 선교사들이 세운 MK스쿨이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전교생이 2백 명가량 되는 학교인데, 학비가 꽤 비쌌다. 빠듯한 선교비로 생활하는 가정 형편으로는 감당하기 만만치 않은 금액이었다.

    결국 남매는 학교를 그만두고 홈스쿨링을 하게 되었다. 이제 지긋지긋한 공부에서 해방된다는 생각에 아이들은 만세를 불렀다. 그러나 섣부른 착각은 금물! 홈스쿨링은 작은 언덕 뒤에 버티고 선 높은 산과 같은 고난 과제였다.

    홈스쿨링에 돌입한 찬혁과 수현의 하루 일과는 그야말로 강행군이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2시간 동안 가정 예배를 드리고 묵상을 한다. 성경 말씀을 읽고 가슴에 와 닿는 구절을 나누고, 내 삶에 적용할 만한 내용을 글로 적는다. 한 시간 동안 밥 먹고 설거지 하고, 9시부터 수업을 시작해 12시 반까지 영어 공부를 한다. 영어가 싫어 학교를 도망치다시피 한 찬혁에게는 끔찍한 형벌이 아닐 수 없었다.

    오후에는 다시 영어 보충 및 국어, 사회, 수학, 과학 공부를 하고 6시에 수업이 끝난다. 학교 다닐 때는 오후 4시면 수업이 모두 끝났는데…. 아이들의 입에서는 ‘차라리 학교가 낫겠어!’라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혹독한 성장통을 겪으며 자란 아이들

    기본과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모님 때문에 찬혁과 수현은 갖지 못하는 게 많았다. 몽골의 다른 부모님들은 아이들을 오지로 데려온 게 미안해 원하는 건 거의 대부분 해주었다. 그러나 찬혁의 아버지는 ‘아닌 건 아니다’라는 원칙을 꺾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가요는 선정적인 노랫말과 비속어가 섞여 있다는 이유로 금지했다. 아버지 몰래 조금씩 듣긴 했지만, 그 영향인지 찬혁은 ‘어린이가 듣고 불러도 될 만큼 순수하고 아름다운 가요’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휴대폰도 스키니진도 없었다. 몽골에 사는 한국 아이들은 모두 그것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찬혁이네는 그런 것들을 마음대로 살 형편도 아니었고, 형편이 돼도 아버지는 옷을 사는 데 돈을 투자하는 분이 아니었다. 찬혁이는 한국에서 이모가 보내준 청바지가 넘어져 찢어졌을 때 속상했던 일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부모님은 한 번도 공부나 성공을 강요한 적은 없었다. 아버지는 엄하셨지만 시시콜콜 잔소리를 하는 분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잔소리마저 듣기 싫은 때가 찾아왔다. 찬혁이가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중2병에 걸렸을 때, 지독하게 아버지와 벽을 쌓고 지냈다. 특별히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찬혁은 아버지 앞에만 서면 입이 닫혔다. 중2병에 걸린 1년여 동안 찬혁은 마음으로 들어가는 방문에 ‘아빠 출입 금지’ 팻말을 걸어놓았다.

악동뮤지션의 탄생

    몽골은 10월 초부터 3월까지 약 6개월간 겨울이 이어진다. 아이들에게는 오래된 피아노와 기타가 유일한 장난감이었고, 노래와 춤이 제일 신 나는 놀이였다. 당시 수현의 피아노 실력이나 찬혁의 기타 실력은 막상막하로 엉망진창이었다. 오로지 신 나게 마음을 담아낼 뿐이었다.

    찬혁의 기타 반주에 수현은 말도 안 되는 가사를 붙여 노래하곤 했다. 찬혁 작곡, 수현 작사의 노래를 만들어서 그렇게 긴긴 겨울을 보내며 놀았다. 곤궁하고 외로운 타국살이에서 이보다 신 나는 일이 없었다.

    찬혁은 특별한 레슨도 받지 않고 혼자 기타줄을 이리저리 만지고 퉁기면서 음을 배워갔다. 어느 날 흔한 4개의 코드에 멜로디와 가사를 입혀 30분 만에 ‘갤럭시’라는 곡을 만들었다. 찬혁은 그때 작곡이 얼마나 쉽고 재미있는지 알게 되었다. “할렐루야!”를 외치는 순간이었다.

    하루 종일 찬혁은 작곡을 하고 수현은 노래를 불렀다. 하기 싫은 공부도 그만두었다. 홈스쿨링을 안 해도 되고 기타 치며 노래만 부르니 세상 자유를 다 가진 듯했다. 게다가 아이들은 자기들도 잘하는 게 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꼈다.

    아버지는 적극적으로 아이들을 홍보했다. 아이들의 노래를 동영상으로 찍어 유튜브에 올렸다. 이름도 지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아이들이라는 의미의 ‘악동(樂童)뮤지션’이 탄생하였다. 유튜브에 영상이 올라가자 조회 수가 1만이 넘었다.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악동뮤지션의 노래를 들었다. 몽골의 작은 아파트에서 놀이 삼아 노래를 하던 아이들이 어느새 세상을 향해 나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출처] 빛과 소금 + 1개월연장 (2014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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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M
-음악의 한 분야로 가사에 기독교 믿음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담는 현대 대중음악의 한 장르
< 작성자 : 김태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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