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_ 크리스틴을 만나다 _ 손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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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만남 _ 크리스틴을 만나다 _ 손지수
  • 출판사월간에세이
  • 잡지명월간에세이 Essay

만남

 

크리스틴을 만나다

 

손지수, 성악가·뮤지컬배우

 

오래전 벌써 19년이 지났을까. 학창 시절 우연히 영화 <오페라의 유령 The Phantom Of The Opera>(2004)을 보게 되었다. 황홀한 음악과 신비롭고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 그리고 극 중 매력적인 소프라노 크리스틴에게 매료되어 한동안 나의 사진첩에는 온통 그녀의 사진들로 가득했다.

이후 마냥 노래가 좋아서 성악 학도가 되었고, 수많은 클래식 음악 속에서 살아가면서 나의 꿈은 언제나 소프라노였다.

언젠가 나도 크리스틴처럼 무대에서 노래할 날들이 오겠지.’

그렇게 성악과를 졸업하고 밀라노에서 데뷔한 후 꿈에 그리던 소프라노가 되었다.

 

‘13년 만의 한국어 공연 <오페라의 유령>.’

나는 우연한 계기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크리스틴 역으로 오디션을 보게 될 기회가 생겼는데, 이를 통해 잠시 잊고 있었던 추억 속의 소중한 작품을 떠올리게 되었다. 책을 읽고 뮤지컬 영상을 보고, 다시 19년 전에 봤던 영화도 찾아보았다. 서곡부터 전해지는 전율이 내 심장을 다시 한번 두근거리게 했다. 세월이 흘러 크리스틴처럼 나도 소프라노가 되었지만, 정말로 작품 속 크리스틴이 될 줄이야. 형언할 수 없는 감사와 기쁨을 느끼며 나는 그렇게 운명처럼 크리스틴을 만났다.

 

작중 크리스틴은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고 아버지가 보내주신 음악의 천사를 만나게 되면서 화려하게 프리마돈나로 데뷔한다. 분장실 벽을 통해서 의문의 목소리를 듣는데, 그 목소리가 아버지가 보내주신 음악의 천사라고 믿을 만큼 그녀는 순수하다. 그러던 어느 날, 음악의 천사 덕분에 크리스틴은 자기 인생의 가장 짜릿한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평생의 꿈을 하루 만에 이루게 되었으니 얼마나 가슴 벅차고 행복했을까. 음악의 천사는 그녀의 영혼을 온통 뒤흔들어 놓았고, 조금씩 그녀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이러한 그는 그녀를 꿈의 문턱까지 데려간 유일한 존재이다.

 

그러나 그렇게 믿고 의지했던 음악의 천사가 잘못된 사랑의 방식으로 크리스틴을 집착하게 되고, 그녀 때문에 살인까지 저지르게 되면서 크리스틴은 그가 음악의 천사가 아닌 가면을 쓴 오페라의 유령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유령은 추악한 얼굴로 인해 낳아주신 어머니에게조차도 버림받게 된 비극적인 인물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가면 속 유령의 얼굴이 어쩌면 우리의 내면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누구나 저마다의 상처가 있고, 그 치부를 감추기 위해 종종 가면 뒤에 숨어버린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사랑받기를 원한다.

 

유령의 처참했던 과거를 알게 된 크리스틴은 결국 유령에게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라고 하며 연민 가득한 마음으로 입맞춤하고 그를 안아주게 된다. 인간의 가장 큰 아픔은 사랑의 결핍이 아닐까.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조차 없다면 사실 사랑은 외로움을 채우려는 본능적인 욕구 충족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유령에게 만일 넉넉한 마음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유령의 처절했던 과거를 바라보면서 어렵게 살아온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그것을 혼자서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계시지 않았거나 충분한 보호와 사랑을 받지 못했거나, 또 어느 누군가에게도 칭찬을 받아본 경험이 없었다면, 그 모든 상처로 인해 생긴 결핍과 외로움은 다른 누군가로부터 채워지며 회복되길 바란다. 크리스틴은 가면 속 유령의 순수한 영혼을 알아봐 주었고, 유령에게 올바른 사랑을 깨우쳐 주었다.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했던 유령은 오히려 크리스틴이라는 천사를 만나면서 영혼의 치유를 받게 된 것이다.

 

메마른 사회에서 한줄기 따스한 햇살과 같은 크리스틴을 만나게 된 것은 내 음악 인생에 있어서 큰 영감과 도전을 불러일으킨다. 크리스틴이 유령에게 참된 사랑을 일깨워 준 것처럼 내 삶을 통해서 누군가를 위로한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일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오늘도 감사와 행복을 안고 천사 같은 크리스틴이 되어 극장으로 나선다.

 

 

*1989년 출생.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 학사 수석 졸업, 베르디국립음악원 대학원 성악과 최고연주자과정 졸업. 2014년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로 데뷔. 국립오페라단 성악콩쿠르 대상(2007) 등 다수 수상.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크리스틴역으로 공연 중.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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