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Road _ 어차피 우주먼지라면 _ 권오철

내 캐시 : 0 캐시

총 결제 캐시 : 0 캐시

사용후 캐시 : 0 캐시

기사
문화·예술
On The Road _ 어차피 우주먼지라면 _ 권오철
  • 출판사월간에세이
  • 잡지명월간에세이 Essay

On The Road

 

어차피 우주먼지라면

 

권오철, 천체사진가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쓴 <코스모스>라는 책이 있습니다. 1980년에 출간되고 40년이 넘은 현재까지도 우리나라 과학책 분야에서 판매 1위라고 합니다. 매우 두껍지만 다행히도 내용 전부가 머리말 단 한 문장으로 압축됩니다. 물론 전체를 읽어야 그 한 문장의 의미가 제대로 다가오겠지만요.

광대한 우주, 그리고 무한한 시간, 이 속에서 같은 행성, 같은 시대를 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기뻐하면서(In the vastness of space and the immensity of time, it is my joy to share a planet and an epoch with Annie).”

 

우주는 너무나도 넓습니다. 한 인간에게는 우주까지 가지 않아도 지구만 해도 충분히 넓습니다. 천체사진가라는 직업 때문에 여기저기 떠도는 저 같은 사람도 안 가본 나라가 훨씬 많습니다. 광대한 우주 앞에 서면 한 인간은 그저 우주먼지가 되고 맙니다. 게다가 주어진 시간도 너무 짧지요. 인간의 평균 수명인 팔십여 년을 날짜로 따져보면 약 3만 일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스물여덟 살이 넘으셨다면 이미 그중 1만 일 이상을 썼습니다. 얼마나 더 남아 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태어난 날은 알아도 가는 날을 미리 알 수는 없지요. 우주먼지인 것도 억울한데 사는 날도 얼마 안 되는 우주먼지입니다.

 

광대한 우주, 그리고 무한한 시간 속에서 어차피 우주먼지로 찰나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면, 행복한 우주먼지가 좋지 않을까요. 굳이 앤이 아니라도 같은 시대를 살아갈 애인과 함께 있다면 좋은 일이겠지요. 이 광대한 우주에서도 이 작은 행성, 그마저도 아주 일부에 불과한 지역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겠지만, 허락된 나날 중 아주 조금이라도 가끔씩 지구 구석구석의 경이로움을 누려본다면 더 좋겠습니다.

 

천체사진가로서 단 한 가지만 추천하라면 오로라를 꼽습니다. 인간이 자연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 중 최고의 경이로움이죠. 오로라를 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오로라는 극지방 상공에 136524시간 언제나 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아래에 갈 수 있는 시간과 구름이 비켜주는 날씨 운이 따라주면 됩니다. 오로라는 11년 주기로 극대기와 극소기가 반복되는데, 2024년을 정점으로 앞뒤 몇 년이 극대기입니다.


극대기에는 오로라가 매우 활발하게 나타나며 오로라 폭풍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사실 그냥 오로라는 눈물까지는 안 납니다. 너울거리던 오로라가 갑자기 밝게 빛나며 움직임이 빨라지다 폭발하듯 쏟아지는 오로라 폭풍을 봐야 눈물이 납니다. 갑자기 백 배 가까이 밝아지는데, 오로라 빛만으로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대지를 덮고 있는 눈이 오로라의 형광을 반사해서 같이 공명합니다. 분홍색이 보이기도 하는데, 대개 오로라의 빛은 눈으로는 희미하지만 사진으로 선명하게 나타나는 데 비해, 이 분홍색은 눈으로 더 선명하게 보이고, 사진으로는 찍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로라 폭풍은 극소기에는 한 달에 한 번 볼까 말까 하지만, 극대기에는 일주일에도 여러 번 나타납니다.

 

게다가 202448일에는 북미대륙에서 개기일식도 볼 수 있습니다. 자연이 선사하는 최고의 경이로움 두 가지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흔치 않는 기회입니다. 날씨 등의 변수가 있어서 떠난다고 100%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떠나지 않는다면, 오로라를 볼 확률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데 0%입니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2023년 9월)
ⓒ 본 콘텐츠는 발행사에서 제공하였으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관련 잡지
월간에세이 Essay
정기구독가[12개월]    72,000원 60,000 (17% 할인)
발행사 : 월간에세이  |  한글 (한국) 월간 (연12회)  | 
주 제 : 문화·예술
발행일 : 매월 23일
발행사의 기사


관련 분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