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읽다 _ 영화 속 가장 기이했던 이미지 _ 강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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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다 _ 영화 속 가장 기이했던 이미지 _ 강해인
  • 출판사월간에세이
  • 잡지명월간에세이 Essay

영화를 읽다-3

 

영화 속 가장 기이했던 이미지

 

강해인, 영화평론가

 

뭘 해도 안 되는 날, 재수 없는 날이 있다. 아니면, 마감은 다가오는데 글이 안 써지는 날이 있다. 이럴 때면 닿지 않을 어딘가에 간절히 신호를 보낸다. ‘제발, 제발되뇌고 세상 모든 신을 찾으며 집 나간 운이 돌아오기를 바라고는 한다. 아니면 귀신같은 존재에게 이 불행의 원인을 전가하고, 이를 떼어내면 상황이 좋아질 거라 믿기도 한다. 과학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는, 그리고 이성적으로 봤을 때 상황을 개선시킬 수 있는 합리적인 사고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불확실성 앞에서 나를 지키고, 열심히 노력한 나를 위로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일 수는 있다.

천박사’(강동원 분)은 인간의 이런 연약한 마음을 읽을 수 있는 퇴마사였다. 아니 정확히는 가짜 퇴마사다. 당주집 장손으로 태어났지만, 뛰어난 관찰력을 바탕으로 의뢰인의 상황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그들의 근심을 덜어준다. 이 과정에서 비과학적인 현상을 믿는 이들을(과학을 믿었다면 퇴마사를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위해 각종 전자 기기로 연출된 굿을 하며 큰돈을 벌고 있다. 가짜라도 괜찮다. 천박사는 심리학적인 해결책을 제공했다라며 이 행위에 자부심을 느낀다. 그런 그에게 진짜 귀신을 볼 수 있는 유경’(이솜)이 거액의 수임료와 함께 사건을 의뢰한다. 진짜 귀신 앞에서도 천박사식 솔루션은 통할 수 있을까.

천박사는 의뢰인이 던져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귀신이 없다고 믿는 퇴마사에게 이 문제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의뢰인의 마음이 안정된 상태라는 결과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 있지도 않은 귀신을 쫓아냈다라고 믿게 한다. 이런 천박사의 솔루션은 효과 없는 가짜 약을 투여했음에도 이를 명약이라 믿은 환자의 긍정적인 마음이 병을 낫게 한다는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와 닮았다. 인간의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혹은 얄팍한지 돌아보게 하는 사례다. 여기서 더 흥미로운 것은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이하 <천박사>)이라는 작품 자체에도 이 플라시보 효과가 작동한다는 데 있다.

오락성을 무기로 추석 연휴 극장가를 공략했던 이 영화는 어딘가 헐겁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이야기의 깊이나 조연 캐릭터들의 조형, 그리고 CG의 활용 등 파고들수록 할 말이 많아질 것 같다. 하지만, <천박사>에는 이 모든 걸 상쇄할 수 있는 매력적인 무기가 있다. 관람 중 아쉬움을 느끼고 다른 생각을 하려는 순간이 있을 때마다 강동원의 이미지가 거대한 스크린을 장악하고 영화 밖으로 이탈하는 것을 막는다. 그의 능청스럽고 익살스러운 연기는 영화의 오락성을 증폭시켰고, <천박사>는 개봉 5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동원하며 극장가에 힘을 보탰다.

수트를 입은 강동원이 카메라 앞에서 미소 지을 때, 더 나아가 그의 얼굴이 클로즈업될 때 어떤 무력감을 느끼고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천박사>는 관객을 위해 강동원이 카메라를 응시하는 샷을 더해 그가 4의 벽을 넘어 관객과 마주하는 구도를 만들어 낸다. 앞서 언급한 영화의 허술한 면들이 가려질 정도로 강력한, 이미지의 화룡점정이다. 더불어 그가 보여주는 액션 역시 수려하다. 과거 <군도>의 액션을 담당했던 정두홍 무술감독은 강동원의 액션에 선의 아름다움이 있다라는 평을 했었다. <천박사>에서 칠성검을 휘두르는 그의 이미지에도 어울리는 평으로, 이 영화에서도 강동원은 아름다움과 쾌감이 있는 액션으로 우리의 눈을 즐겁게 했다.

강동원은 늘 스크린 속에서 소년으로 숨 쉬고 있었다. 지금도 회자되는 <늑대의 유혹>에서 청량한 소년으로 강렬하게 존재감을 알렸던 그는 <검은 사제들><검사외전>으로 대표되는 2010년대에도, 올해 개봉한 <천박사>에서도 여전히 소년의 미소를 간직하고 있었다. 이는 강동원의 이미지와 연기에 성숙함이 없다는 것이 아니며, 같은 이미지를 반복한다는 것도 아니다. 그가 연기한 얼굴 속에는 인간의 순수성을 설득해 내고야 마는 묘한 매력과 영화까지 비범하게 하는 힘이 있다. 2030, 강동원의 경이로운 이미지는 어떤 방식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을지 궁금하지 않은가.

모처럼 극장에서 어머니와 함께 봤던 <천박사>. 극장을 나오던 어머니와 아들은 돌고 돌아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강동원은 왜 안 늙지?”

오컬트 소재를 녹여낸 <천박사>에서 가장 불가사의한 이미지는 시간을 거스른 강동원, 바로 그였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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