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야구장이보다 예수쟁이가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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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야구장이보다 예수쟁이가 좋습니다”
  • 잡지명빛과 소금 + 1개월연장

 “나는 야구장이보다 예수쟁이가 좋습니다”
 
야구 감독은 선수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한다. 마운드에 나갈지, 타석에 들어설지, 어떤 공을 던지고, 어떤 공을 칠지조차도 세밀하게 지시한다. 하지만 그 감독도 실수는 한다. 내 인생의 감독은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있다. 우연 없는 인생 경기에서 실수 없는 감독이신 하나님은 선수의 아픔을 다 아신다고 고백하는 사람. 45년 야구 인생을 살아온 이만수 감독을 합정동 작은 카페에서 만났다.
취재김재원 정리이승연 사진이승무
 안부
김재원 : 요즘 삶의 날씨는 어떠세요?
이만수 : 새로운 해가 떠오르고 있어요. 1년 전에 감독 생활 마치면서 석양이 졌고요.
김재원 : 얼굴이 참 맑아 보이세요.
이만수 :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한 해를 보냈어요. 몇 시간처럼 흘러갔죠. 평안해 보인다는 얘기 많이 듣거든요. 한국야구위원회 육성보호위원장 하면서 해설도 하고, 주로 재능 기부를 많이 하고 있죠. 간증이나 강연도 다니고 있고요.
김재원 : 라오스에도 다니신다면서요?
이만수 : 작년 이맘 때, 감독 그만두고 처음 라오스에 들어갔어요. 야구 불모지죠. 거기서 최초의 야구 구단 만들고 구단주가 됐어요. 지금도 제가 나와 있으면 거기 선수들이 저를 보고 싶어 해요. 말도 안 통하는데, 아이들 생각하면 뭉클하죠. 이래서 사람들이 봉사하는구나 싶어요. 사실 감독 은퇴하면 힘들고 외로울 줄 알았는데, 무척 즐거워요. 제가 40년 넘게 일기를 쓰는데, 틈틈이 은퇴 후에 할 일을 적어두었거든요. 22가지나 되더라고요. 지금은 5가지 정도 하고 있어요. 
김재원 : 제가 다 기대가 되는군요. 건강은 괜찮으세요?
이만수 : 지금 오히려 더 좋아진 것 같아요.
김재원 : 가정도 평안하시고요?
이만수 : 그럼요. 아내와 시간 더 많이 보내고 있고, 큰 아들은 작년에 결혼했어요. 저도 내년에 할아버지 됩니다. 막내만 데리고 삽니다.
김재원 : 축하합니다. 이제 야구인, 신앙인을 넘어서 사역자로 살고 계신데요. 집사님 인생을 시기별로 나눠봤으면 해요. 그러면 하나님의 역사를 잘 볼 수 있겠지요.
인생 1기 - 야구의 시작, 신앙의 시작
김재원 : 야구를 좀 늦게 시작하셨죠?
이만수 : 중학교 때 시작했어요. 1학년 여름에 야구선수를 모집했어요. 전교생이 거의 다 지원했는데, 수백 대 일을 뚫고 제가 뽑힌 거죠. 달리기를 잘 했거든요. 그때만 해도 맞으면서 운동했어요. 어느 날, 선배에게 이유 없이 맞고 오는데 억울한 거예요.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다짐했죠. 10년 후에 훌륭한 선수가 되겠다고요. 그날 이후로 4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어요. 엄마한테 깨워 달라고 해서 운동했는데, 그때 별명이 쌍코피였어요. 그래도 저희 집이 정육점을 해서 고기는 실컷 먹고 다녔어요. 또 다른 별명은 독종. 연습벌레였죠. 게다가 중학교 1년을 더 다니다 보니까 최고 선수가 된 거예요. 그래서 고등학교, 대학교 때 승승장구했죠.
김재원 : 신앙은 언제쯤에 접하셨나요?
이만수 : 대학 시절에 만난 인생의 첫 여자가 지금 아내예요. 캠퍼스 커플이었는데요. 연애할 때 아내가 가끔 교회에 나가자고 했어요. 저는 펄쩍 뛰었죠. 아니 운동하기도 바쁜데 무슨 교회냐, 나는 최고가 되어야 한다면서. 아내도 그냥 물러서더라고요. 가끔 그냥 물어봤으니까요. 그런데 3년쯤 지나서 최후통첩을 하더군요. 자기하고 교회 안 다닐 거면 헤어지자고요. 깜짝 놀랐죠. 국가대표 되면서 프러포즈까지 했거든요. 그때부터 교회 나간 것이 지금까지 온 거예요. 저희는 새벽에 데이트 했어요. 새벽 4시에 천호동 집에서 아내가 사는 군자동까지 뛰어 가서 새벽 5시부터 데이트하고, 장모님 차려주신 아침 먹고 돌아오곤 했죠. 힘든 줄도 몰랐어요. 한 번은 국가대표 탈락하고 집을 나가서 기도원에 가 있었어요. 거기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죠. 그때부터 아내가 저를 위해서 기도 많이 했죠.
인생 2기 - 야구 전성기, 신앙 도약기
김재원 : 1982년에 프로야구가 마치 이만수 선수를 기다린 것처럼 시작됐죠. 첫 경기에서 첫 안타, 첫 타점, 첫 홈런 기록하셨잖아요. 기억이 생생해요.
이만수 : 사람들이 야구 시작할 때부터 운이 좋았다고 했지만 가만 보면 하나님이 이끌어 가신 거죠. 모든 과정이 그랬더라고요. 프로야구 출범할 때 주위 사람들이 나를 위한 것이었다고 할 정도였거든요. 그때만 해도 세상의 환호와 인기에 물들었죠. 진정한 신앙이라기보다 하나님을 이용한 신앙이 아니었나 싶기도 해요. 그때도 전국을 다니면서 간증 많이 했거든요.
김재원 : 그때 이미 제대로 믿으셨군요.
이만수 : 방망이랑 헬멧 뒤에 십자가 그려놓고, 타석에 오르기 전 항상 기도하고. 마치 보여주기 위한 신앙 같았어요. 젊은 혈기로 그렇게 했는데요. 하나님도 성격에 맞춰서 쓰시는 것 같아요. 저를 잘 아셨던 거죠. 간증도 오래 다니다 보니까 꾼이 되는 것 같았어요. 하나님을 빙자해서 저를 높인 거죠. 그래서 선수 생활 마무리하기 전에 간증을 그만뒀어요. 감독할 때까지 18년 동안 전혀 안 했죠.
김재원 : 그렇게 말씀하시지만 생활 속에서도 전도에 힘쓰셨다면서요. 
이만수 : 지혜롭지는 못했죠. 불도저였어요. 밀어붙였던 거죠. 주일이면 후배들 모아서 교회 데려가고, 지방 가면 목사님 초청해서 예배드렸어요. 구단에서는 제가 잘 하는 선수니까 별 말을 안 했죠. 물론 모두 제 말을 들은 건 아니지만. 지금은 고인이 되신 장효조 선배는 제가 전도할 때마다 화를 내면서 거절하시더군요. 근데 제가 미국 생활 10년 하고 돌아왔을 때 전화를 하셨어요. “만수야, 나 교회 다닌다. 우리 아들은 목사다” 하시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그런 선배들이 몇 분 계세요. 우리는 뿌리기만 하고 하나님이 거두시는 거죠. 제가 선수 시절에 새벽마다 성경책 끼고 교회를 갔었는데요. 나중에 보니까 그 모습을 부러워하던 후배들이 있었더라고요. 미국에서 우연히 만난 후배도 그때 그렇게 따라가고 싶었다면서 지금은 교회에 열심히 다닌다고 하더군요. 코치 시절에 우리 팀 버스 기사님도 새벽에 교회 가는 제가 부럽다면서 한 번 데려가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뒤로 계속 모시고 가면서 본격적으로 전도했더니 이제는 가족이 다 다녀요. 참 감사하죠. 하나님께 정말 우연이란 없어요.
김재원 : 선수 생활 마무리할 때는 힘드셨죠?
이만수 : 저는 영원히 선수일 줄 알았어요. 시간이 안 갈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너무 빠르더라고요. 전혀 대비를 못했죠. 선수 말년에 얼마나 방황했는지 몰라요. 성질부리고, 화를 삭이기 위해 산에 올라가고. 무덤에도 많이 갔어요. 결국 우리는 흙으로 돌아가니까, 거기서 뭔가 깨달음을 얻고 싶었죠. 전통 시장도 많이 갔는데, 활기 넘치는 모습을 보면 안정이 되니까. 그런데 그런 힘든 시절을 30대 후반에 경험한 것이 참 감사했어요. 하나님이 인생을 준비하라는 지혜를 주셨거든요. 삼성에서 나오니까 다른 인생이 기다리더군요.
인생 3기 - 이방 땅의 광야학교
김재원 : 미국행 결심하시고, 10년 동안 이방 나라에서 코치의 길을 걸으셨어요.
이만수 : 저는 간증할 때 네 가지 이야기를 합니다. 첫째, 믿는 성도들에게는 우연이란 없다. 둘째, 나의 나 됨은 하나님의 은혜다. 저의 살아 있는 고백이에요. 야구도, 프로야구 출범도 우연이 아니죠. 제 인생은 하나님의 은혜에 이끌린 삶이거든요. 원래 저는 하루 4시간 자는 제 노력 때문인 줄 알았어요. 신앙을 갖고 보니까 제가 한 게 없고,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가끔 저보고 야구를 위해 태어났다고 하는데, 저는 야구의 ‘야’ 자도 몰랐고, 또 둔했어요. 공부도 못했고, 똑똑하지도 않고, 잘 하는 거 하나 없었는데, 하나님이 미련한 저를 부르셔서 똑똑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 했던 모양이에요. 미국 생활도 마찬가지죠. 영어도 못하는 제가 뭘 할 수 있었겠어요. 실은 선수 생활 마무리하기 전에 새벽마다 영어 학원을 다녔어요. 영어 선생 하는 친구한테 과외도 받았죠. 나름 준비는 했지만 그 정도로 될 문제가 아니잖아요. 자존심 강한 제가 남의 나라에서 대접이나 제대로 받았겠어요. 하나님이 저를 끝없이 낮추셨죠. 젊은 애들이 지나가면서 툭툭 머리를 치고 그러지를 않나. 한국 간다고 가방을 몇 번이나 쌌는지 몰라요. 그런데 제 인생 철학이 절대 포기하지 말자는 거고, 야구 철학은 기본, 집중, 팀 세 가지거든요. 힘들 때마다 견디자고 이 악물고 다짐했죠.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이 데려오셨으니까 끝까지 끌고 가달라고 졸랐고요. 한 번은 제가 3루 작전 코치로 나갔는데, 기본적인 영어에 한국어 섞어서 최선을 다해서 코치했어요. 점수가 안 나니까 지루하잖아요. 선수들 격려한답시고 온갖 쇼를 다했는데, 7회가 끝나고 주심이 나가라는 거예요. 시끄럽다고. 저도 대들었죠. 그런데 우리 감독이 저를 안 도와주고 오히려 주심 편을 드는 거예요. 그래서 퇴장하려고 하는데 또 나가지 말래요. 어쨌든 8, 9회를 얌전히 끝냈죠. 그러고는 호텔 숙소에 돌아가서 샤워기 틀어놓고 태어나서 제일 많이 울었어요. 그렇게 서럽더라고요. 한국 돌아가야지 마음먹고 있는데, 그때 제 마음에 출애굽기 14장 13절 말씀이 떠올랐어요.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원망할 때, 너희는 가만히 있어 하나님 하시는 일을 보아라. 그 말씀을 저한테 주셨어요. 저는 솔직히 야구 인생 45년 동안 권태기가 없었거든요. 야구장 가는 길이 항상 좋았어요. 하지만 그 다음날은 소가 도살장 끌려가는 마음으로 갔어요. 그런데 갑자기 제너럴 매니저가 대뜸 저한테 고맙다는 거예요. 얘기를 들어보니 어제 경기를 본 1백50명의 팬들이 구단에 이메일을 쓴 거예요. 3루 작전 코치야 말로 진정한 프로다, 경기 내내 최선을 다하더라, 이렇게 열심히 선수들 격려하는 코치는 처음 봤다, 이 사람 때문에라도 우리는 너희 팀의 영원한 팬이 되겠다. 그러니 고맙다는 소리를 할 수밖에요. 하나님이 그렇게 일하시더라고요. 그때부터 구단에서 인정을 받았거든요. 이런 일이 여러 번 있었어요. 저를 유난히 견제했던 타격 코치도 나중에 제 진심을 알고 오히려 저의 든든한 지원군이 된 적도 있고요. 중간에 한국에 들어오려고 다 그만뒀는데, 한국 팀이 갑자기 취소하는 바람에 국제 미아가 된 적도 있었는데, 그때도 하나님이 갈 길을 다 마련해 놓으셨죠. 정말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신 분이에요. 제가 간증하는 세 번째 이야기예요.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
김재원 : 10년 동안 광야학교를 견디셨는데, 돌아오는 결정도 쉽지 않으셨죠?
이만수 : 들어오기 싫었어요. 2006년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88년 만에 우승하고, 저하고도 2년 재계약을 했거든요. 처음에 SK의 제안을 받고 거절했죠. 그런데 제 아내가 들어가야 한다는 거예요. 저는 싫다고 했고. 그랬더니 아내가 다른 지역에서 학교 다니던 큰 아들을 불렀어요. 아들이 하는 말이, 미국에서 하는 일은 아빠 말고도 할 사람이 많은데, 한국에서 미국 야구 문화를 전수할 사람은 아빠 밖에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10년 훈련시키신 이유라는 거죠. 사실 미국의 편안한 생활을 버리기가 힘들었어요. 그 주일에 예배를 드리는데, 그때 말씀이 또 출애굽기 14장 13절이었어요. 그 말씀 듣고 순종할 수밖에요.
인생 4기 - 내 아픔 아시는 하나님
김재원 : 한국에 오셔서 즐기는 야구를 보여주셨잖아요. 이벤트도 많이 하시고, 속옷 바람으로 그라운드도 누비시고요.
이만수 : 제가 워낙 개방적이고, 즐기는 걸 좋아하다 보니까. 미국의 즐기는 야구가 부러웠죠. 한국 야구도 열심히만 하지 말고 좀 즐겼으면 좋겠는데. 그게 쉽지 않아요. 가발도 쓰고, 엉덩이 탈도 쓰고, 춤까지 췄죠. 그런데 감독이 오두방정 떤다고 기사가 나고, 체면이 없다고 하고. 그래도 내 인생이다, 하고 그냥 했거든요. 좋다고 해주시는 분들 덕분에 힘을 냈죠.
김재원 : 더욱이 갑자기 감독 맡으시면서 마음고생 많이 하셨죠.
이만수 : 저는 제 일이기 때문에 그래도 견딜 만했는데, 식구들이 무척 힘들었죠. 평생 먹을 욕 그때 다 먹었거든요. 전임 감독 팔아먹은 유다라는 별명도 얻었고요. 경기장마다 현수막에 ‘이만수가 싫다’ 적혀 있는데, 미치겠더라고요. 하나님을 얼마나 원망했는지 몰라요. 그런데 하나님이 다 갚아주시더군요. 저도 변명하고 해명하고 싶었는데, 더 힘들어질 것 같았어요. 결국 그래 욕해라, 하나님이 아시지, 하나님만 알면 된다, 우리 가족만 알면 된다. 이런 심정으로 버텼죠. 결국 다 밝혀주시잖아요. 그래서 제가 하이모, 하이모 그래요. 제가 간증할 때 하는 네 번째 이야기죠. ‘하나님이 이 아픔을 모르시겠나?’ 하나님이 여러분 아픔 다 알고 계세요. 그러면 된 거잖아요.
김재원 : 야구 인생 45년이 파란만장하네요.
이만수 : 그래도 평안하게 마무리해서 참 감사해요. 감독 2년차 때 6위를 했어요. 매번 정상에 있다가 너무 속상한 거예요. 예수원에 기도하러 갔었죠. 그때 하나님이 제 인생을 영화처럼 보여주시더군요. 하나님은 단 한 번도 나의 곁을 떠난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내가 낮아지나 높아지나, 아프나 슬프나, 항상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니까, 이후에는 성적이 꼴찌여도 불안하지 않는 거예요. 작년에 8위까지 갔다가 결국 5위로 올라가서 마지막 경기 결과로 가을 야구 진출 여부가 결정되는 때였어요. 새벽기도를 하는데 하나님이 ‘여기까지다’ 하시더군요. 그래서 그날 인터뷰에서 ‘저는 여기까지입니다’라고 말했죠. 미련도 후회도 없이 마무리해서 얼마나 감사한지요.
인생 5기 - 부르신 곳에서 예배하다
김재원 : 이제 앞으로가 더 기대됩니다.
이만수 : 하나님이 인생에서 간증거리를 참 많이 주셨어요. 참 감사하죠. 감독 은퇴하고 아내하고 동유럽 여행 가려고 준비하고 있었어요. 아내한테 제일 미안했으니까요. 광림수도원에서 아내에게 고백하려고 하는데, 아내가 먼저 라오스를 가라는 거예요. 당신 매번 말만 하고 진짜 봉사를 해본 적이 없다고 하면서. 라오스에 계신 선교사님 한 분과 진즉부터 연락하고 있었던 모양이에요. 제가 야구용품을 가끔 보내드렸거든요. 그래서 라오스를 갔더니, 거기에 제가 할 일이, 만날 영혼들이 예비되어 있던 거죠. 선교사님이 땀 뻘뻘 흘리며 야구하면서 애들한테 복음을 전하고 계셨는데, 그분이 야구를 못하시더라고요. 기도 중에 하나님이 이만수 믿고 야구 선교를 시작하라고 하셔서 순종했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라오스 오고 가게 됐는데, 저는 그렇게 믿음이 좋은 사람도 아니거든요. 어찌나 미안하던지. 하나님 실수하신 거 아니겠죠?
짧은 질문 간단한 대답
김재원 : 좋은 감독이란?
이만수 : 인내와 기다림으로 가르치는 감독.
김재원 : 좋은 목자란?
이만수 : 끊임없이 희생하는 목자.
김재원 : 예수님은 어떤 분이세요?
이만수 : 예수님은 나의 전부예요.
인생 육하원칙
김재원 : 언제가 제일 그리우세요? 
이만수 : 고통 받고, 견딜 수 없던 시절이요. 저는 괴로우면 즐거워요. 고난 중에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죠. 미국에서 코치할 때 한국 팀 계약은 취소되고, 미국 팀은 그만둔 상태고, 그래서 국제 미아가 된 적이 있어요. 막막해서 기도하는데, 그때도 새벽기도에서 출애굽기 14장 13절 말씀을 받았어요. 가만히 있었죠. 보름 만에 원래 있었던 팀에서 부르더군요.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네요. 훈련 없이 좋은 선수 못 되듯이, 고통 없이 평안한 인생은 단 한 사람도 없어요.
김재원 : 누구에게 제일 미안하세요?
이만수 : 아내죠. 제일 고맙기도 하고요. 아내는 하나님 주신 최고의 선물이자 제가 인생에서 제일 잘 한 선택이죠.
김재원 : 그러면 왜 이렇게 사세요?
이만수 : 저는 이게 정말 행복해요.
김재원 :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
이만수 : 마음 같아서는 계속 이렇게 살고 싶어요. 봉사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삶.
김재원 : 그러면 제일 소중한 건 뭔가요?
이만수 : 제 신앙, 믿음이 제일 소중해요.
김재원 : 먼 훗날 하늘나라에서 예수님 만나실 때, 뭐라고 말하고 싶으세요?
이만수 : 참 힘들었어요, 하면서 울 거 같아요. 힘들었거든요. 야구하면서 신앙인이라고 드러냈기 때문에 핍박도 많았고 욕도 많이 먹었죠. 행동도 조심스러웠고요. 그리스도인이라고 낙인찍힐 때까지는 정말 힘들었어요. 지금은 굉장히 편해요. 이만수는 예수쟁이. 이 낙인이 찍히길 원해요. 우리 믿는 사람들이 낙인찍혀야 삶이 편해져요. 중간에 있으면 세상이 더 욕한다니까요.
김재원 : 끝으로 독자들이 삶을 성찰해 볼 수 있는 질문 하나 던져주세요.
이만수 :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달려가십니까?
김재원 : 감사합니다. 집사님.
사람들은 그가 평생 야구를 위해 살아온 줄 안다. 하지만 그에게 야구는 하나님께서 주신 도구였다. 그는 야구를 통해서 평생 예수를 위해 살아왔다. 앞으로도 야구를 통해 하나님 나라 확장에 앞장설 것이다. 그는 인터뷰 내내 ‘저는 그럴 만한 사람이 못 되지만’, ‘제 입으로 이런 말해서 죄송하지만’, ‘우리 하나님이 참 대단하신 거죠’ 라고 말하며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을 높였다. 아마도 그의 진심은 인생의 감독이신 하나님 앞에 훌륭한 선수가 되겠다는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삶이 아닐까? 그의 맑고 환한 웃음이 바로 그 증거다. 

[출처] 빛과 소금 + 1개월연장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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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학대
-성인이 아동의 건강 또는 복지를 해치거나 보호자가 아동을 유기하거나 방임하는 것
< 작성자 : 조윤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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