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의 각성 - 사회개혁의 철학적 문법

괜찮다고 말하지만 괜찮지 않은 너와 나, 우리가 안고 사는 우울. 그리고 그 감정이 가져온 마음의 병 우울증. 화제의 채널



“우리 시대의 몇 안 되는 창의적인 정치철학자. 정치철학의 위대한 질문들과 우리 시대의 정치적 난관을 풀 영감을 담고 있는 책” ―브루스 애커만Bruce Ackerman, 예일대 법정치학 교수



원대한 사회변혁의 비전을 담은 정치철학서

이 책은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미국의 탁월한 법철학자이자 모국 브라질의 현실 정치가인 로베르토 웅거Roberto Mangabeira Unger(1947～ )가 2006년에 펴낸 정치철학서이다. 우리 시대의 심오한 철학적 전망과 현실적 방안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지난 2006년 브라질공화당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려 한 저자의 정치적 출사표이기도 하다. 그래서 책의 구성을 보면 현실 정치를 뒷받침하는 기성 철학의 논리를 비판하고(1～2장), 저자가 주장하는 대안인 새로운 실용주의 혹은 실용주의 본체本體를 철학적 · 정치적으로 다각도로 분석한다(3～7장). 이를 바탕으로 저자가 주장하는 구체적인 방안들은 책의 후반부, 8장부터 13장에 걸쳐 분야별로 제시된다. 우리 삶과 현실의 출발점이 되는 철학적 근거에서 출발하여, 미래와 사회를 영구히 창조하고 변혁하려면 어떻게 우리의 주체를 일깨우고 넘어서야 하는지를 예언적으로 웅변한다. 이 책은 사회변혁 운동의 방향과 사회의 미래를 사유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지리멸렬한 현실과 지지부진한 사회개혁에 염증을 느끼고 점점 개인화되는 우리의 현실에 한 줄기 영감을 비추는 책이 될 것이다.



이 책의 현실적 효용성

이 책의 저자인 로베르토 웅거는 일회적 혁명을 부정한다. 사유와 생활을 조직하는 형식 전체를 완전히 다른 형식으로 폭력적이고 급격하고 전면적으로 대체하는 19세기적인 혁명은, 혁명적 개혁의 에피소드일 뿐이다. 일회적 혁명으로 변화하는 것은 기존의 제도와 관념의 일부 구조일 따름이다. 웅거는 ‘영구혁명’을 주장한다. 제도와 의식 구조의 변혁은 일회적인 전면적 교체가 아니라, 일상적인 투쟁과 비상적인 투쟁이 교차하는 영원한 과정이다. 이 영구혁명이 이 책의 목표이자 웅거가 제시하는 ‘현실적’ 비전이다.

이 책의 효용성은 장기적 비전이 사라진 시대, 당면 문제 해결에 급급한 정치 현실에 다시금 거시적인 철학적 · 정치적 · 현실적 비전을 제시하는 데 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책의 첫 장만 들추어보아도 이 책이 매우 사변적인 논의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자가 제시하는 제4, 제5의 길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전망에 다가서려면 ‘영원한 철학’이라고 하는, 우리의 과거와 현실 및 미래를 꽁꽁 에워싸고 있는 견고한 믿음을 깨부수어야 한다. 그런 후에야 저자가 주장하는 주체를 일깨우는, 급진적 실용주의 노선에 발을 디딜 수 있다. 그러려면 우리가 맨 먼저 해야 할 일은 인간성을 다시 상상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상상력과 의지를 옴짝달싹 못하게 묶고 있는 세 가지를 의문에 부쳐야 한다. 바로 합리화, 인간화, 도피주의이다. 저자는 주장한다. 인간은 신神이다. 여기에는 어떠한 종교적 의도도 없다. 우리 인간은 분명 필멸의 유한한 존재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상상력과 비전마저 유한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별들의 시선’으로 우리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며 진정 인간 존재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1백 년 후 1천 년 후를 내다보는 영원한 개혁으로 가는 길을 찾아 개척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들이다. 이것이 약관 29세에 하버드대학 법학과 종신교수가 된 비범한 천재 웅거가 제안하는 ‘영구혁명’의 첫 출발점이다.



급진적 실용주의라는 개혁 프로그램

급진적 실용주의는 웅거가 제시하는 사회개혁의 철학적 문법이다. 이 책은 사상사에서 흔히 ‘실용주의’라고 부르는 경향들이 철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핵심을 상실했으며, 그 신봉자들의 입맛에 따라 아주 허접하게 변질되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우리가 이해하는 윌리엄 제임스나 존 듀이류의 실용주의와 전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웅거는 실제 결과가 진리를 판단하는 기준이라고 주장하는 이 철학사상에서, ‘실용성’이 아니라 ‘실험성’에 방점을 찍는다. 급진적 실용주의는 맥락을 보존하는 활동과 맥락을 변혁하는 활동 사이의 간극을 해소하려는 조작적 이데올로기다. 그러므로 급진적 실용주의는 영구혁명 프로그램이다.

우리의 관심은 사회와 문화의 성격을 개조하는 데, 운명을 창조의 대상으로 전환시키는 데 있다. 우리의 관심은 실천적인 경제적 · 기술적 진보에 있고, 우리의 도덕적 · 정치적 관심은 부패하고 활력을 잃은 사회적 위계질서에서 개인을 해방시키는 데에 있다. ‘급진적 실용주의’는 이러한 전향을 추구하는 이론이다. 급진적 실용주의는 우리에게 운명이나 체념을 상대로 투쟁하는 법을 가르친다.



사회민주주의의 재창조

웅거는 20세기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정치와 생산의 재편이라는 영역을 너무나 쉽게 포기했다고 비판한다. 20세기 중반 사회민주적 제도들을 도입한 혁명적 개혁들은 ‘보상적 재분배’라는 미봉책에 안주해 버렸다. 웅거는 생산과 소유 영역에서 사회민주주의를 관철하려 한다. 한 마디로, 민주주의의 최고봉으로 칭송받는 현 사회민주주의를 재창조하자고 주장한다. 오늘날 스칸디나비아 3국의 사회민주주의는 지구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사회조직 모형으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유럽식의 사회적 유연성과 미국식의 경제적 유연성 간의 제3의 길이라는 떠들썩한 종합은 말이 종합이지 투항에 지나지 않았다. 소득과 부의 분배와 관련된 거시경제적 정책을 지키기 위해, 보호 정책과 낡은 해법의 ‘사회적 동반자 관계’로 구축된 기득권이라는 값비싼 제약을 받아들였다. 현대 유럽 사회민주 체제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사회민주주의를 변질시킨 이데올로기적 타협 조건을 전복하고, 일련의 새로운 실험주의적 실천과 대안적 제도들을 도입해야 한다. 웅거는 민주주의를 급진화하고,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제한하는 유한성의 굴레에서 벗어나 유럽식 사회민주주의를 극복하고 재창조하자고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