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앞에 서는 것에 늦은 때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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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교양
하나님 앞에 서는 것에 늦은 때란 없다
  • 잡지명빛과 소금 + 1개월연장

하나님 앞에 서는 것에 늦은 때란 없다
- 2015년 12월호
안병경, 한국적인 정겨움을 참 맛깔스럽게 표현하는 배우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유쾌하고 정이 넘쳐흐를 것 같은 그에게 그토록 파란만장한 인경 역경이 숨어 있을 줄 몰랐다. 그가 들려준 삶의 이야기는 한 편의 대하드라마, 한 편의 장편소설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 사람에게 어떻게 이런 일들이 연이어 일어날 수 있나 신기할 만큼…. 먼 길을 돌고 돌아 뒤늦게 하나님 앞에 무릎 꿇은 안병경의 아프고도 은혜로운 스토리가 평범한 감동을 넘어선다.
취재서진아 사진인성욱
 
깡촌에서 연기자를 꿈꾼 소년
 
저희 집은 원래 불교 집안이었어요. 두메산골에 살았는데 마을 언덕배기 작은 교회에서 성탄절에 나눠주는 사탕 받아먹으려고 간 기억은 있지만, 교회와는 크게 인연이 없었어요.
4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정형편상 어머니와도 떨어져 살아야 했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고학을 했어요. 그래도 성격은 밝았어요. 웅변대회, 글짓기대회, 서예대회에서 입상하고 배구부 주장까지 했어요. 하는 것마다 두각을 나타냈죠. 그때 교장 선생님께서 “너는 배우감이다” 하셨는데, 그 말 한마디에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연기 공부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중학교를 졸업하고 무작정 혼자 서울로 올라왔어요. 동네에서 친하게 지내던 누나가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그 누나가 학교도 알아봐주고 처음에 잘 곳도 마련해 주었어요. 정말 신세를 많이 졌는데 나중에 KBS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찾았더니, 이미 하늘나라로 떠난 뒤더라고요.
머슴살이로 고등학교를 졸업하다
연기자의 꿈을 품고 서라벌고등학교에 들어갔는데, 그때부터 엄청나게 고통스런 나날들을 보냈어요. 잘 곳이 없어 학교 상담실에서 담요 한 장 덮고 지새웠어요. 겨울밤 창문이 덜컹거리는 학교 마룻바닥에 누워 추위와 두려움에 떨며 밤새 울었어요.
그러다 부잣집에 머슴으로 들어가 집안일 도우며 학교에 다니게 되었어요. 학교 끝나고 연극 연습까지 한 뒤 한밤중에 들어가 연탄 20장을 갈았어요. 그 집 아들들 운동화 빨아 말리면서 깜빡 졸다가 태워먹고 얻어맞기도 하고요. 신문 배달, 구두닦이 등 온갖 고생
다 하면서 학교를 다녔어요.
지금에 와서야 그런 생각을 해요. 그 당시에 하나님을 만났다면 두려움 없이 얼마나 씩씩하게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을까 하고요. 그 이후로도 수많은 고통을 겪은 뒤에야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죠.
1천5백 명을 물리치고 당당히 탤런트가 되다
고등학교 3학년 때 TBS 탤런트 공채에 붙어 프로 연기자의 길에 접어들었어요. 당시에는 고등학생 신분으로 연기자가 될 수 없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합격이 되었어요. 1천5백 명 지원에 1차 1백50명, 2차 48명, 3차 20명을 거쳐 최종 5명에까지 올라갔죠. 입을 옷도 없어 교복을 입고 갔는데, 마침 고등학생 역할이 필요했던 터라 제가 딱 눈에 띄었던 거예요. 처음에는 거의 엑스트라로 출연했지만, 내가 번 돈으로 당당히 대학을 갈 수 있게 되다니 감격 그 자체였어요.
저는 머슴, 농촌 총각 등 주로 토속적인 역할을 많이 했어요. 살아온 인생이 작품에 투영되었다고 할 수 있죠. 하하! 그중에서도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품은 〈TV 문학관-삼포 가는 길〉과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 〈서편제〉예요. 안병경을 지금까지 연기자로 있게 해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죠.
임 감독님은 아버지 같은 분이에요. 저에게서 한국적인 색채를 발견해 주시고, 큰 역이든 작은 역이든 많은 작품에 세워주셨어요. 제가 신내림 파문 때문에 일을 못하고 있을 때도 저를 작품에 써주신 고마운 분이에요.
빚보증, 영화 제작 실패, 교통사고, 이혼…
저는 성실하게만 살면 다 잘될 줄 알았어요. 하나님을 알고 난 뒤에야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만요. 꽤 오랜 시간에 걸쳐 그 부분을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셨어요. 제 힘으로 대학 다니고, 여동생 공부 시키고 시집보내고, 저축상도 타고…. 성실한 국민으로서 자랑스러울 만큼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돌아보면 금전적인 궁핍을 메우기 위해 저는 그저 하나의 도구에 불과했던 삶이었습니다.
전세방 한 칸을 두 칸으로 늘리고 또 늘려서 27살에 드디어 내 집을 마련했습니다. 결혼도 했고요. 그런데 그렇게 마련한 집을 한순간에 빚보증으로 날리게 되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고생하며 산 집인데, 허탈함이 밀려왔습니다. 그때 주변 분의 권유로 교회에 나갔어요. 그때는 하나님이 고민을 없애주는 분인 줄 알았어요.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었죠. 그러면서 막말로 죽고 싶다고 얘기하고 다녔는데 정말로 교통사고를 당해 3일간 죽었었어요. 내장기관인 비장이 터지는 큰 사고를 당했어요.
그 후 잃었던 집을 찾고 겨우 회복되어 가는가 싶었는데, 욕심이 팽배해져서 영화 제작에 손을 대게 되었어요. 영화 잘되게 해달라고 기도도 열심히 했는데 결국 실패했어요. 그러자 마음에 반감이 생겼어요. ‘믿어도 안 되는구나’ 싶었죠. 그 와중에 이혼하고 가정도 깨지고…. 지하방에서 혼자 곰팡이랑 씨름하는 삶이 시작되었죠.
내림굿, 극단적인 선택과 뒤늦은 후회
이것저것 하는 것마다 안 되니까 하나님께 투정의 마음이 생겼습니다. 왜 이루어주시지 않느냐고…. 눈에 보이는 게 없던 시절이었죠. 해봤자 되는 일이 하나도 없을 거라며 포기하려 할 때쯤 친구가 다시 살 방법이 있다며 저를 점집으로 데리고 갔어요. 그곳에서 저더러 내림굿을 받아보면 어떻겠냐고 했고, 순간 절박한 심정에 해서는 안 될 판단을 했어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제안을 받아 들였지만, 내림굿을 받는 순간 즉시 후회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화제는 될 대로 되었고 발을 떼기에는 늦은 상태였죠. 그 후 접신도 없었고 거짓으로 두어 번 다른 사람의 점을 봐주었지만, 거짓으로 행한 일이 오래 지속될 리 없었습니다.
일말의 양심과 공인이라는 책임을 가지고 양심선언을 하고 손을 뗐습니다. 그쪽과 관계된 사람들에게 공갈 협박을 받기도 했지만 과감히 잘라냈어요. 실제로 그쪽과 관련된 시간은 아주 짧았지만, 꽤 오랜 시간 꼬리표처럼 따라다녔어요. 그 이미지를 벗겨내는 데 무척 힘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믿음의 사람이 된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부질없는 행동이었는지 크게 회개할 따름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주신 마지막 동반자
고통의 큰 파도를 한참 넘을 때쯤 지금의 아내를 만났습니다. 아내를 만나 재혼한 지 16년 되었어요. 흔히 말하길 남자가 재혼을 하려면 경제적인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하죠. 그런데 저는 나락으로 떨어진 상태에서 아내를 만났고, 아내에게 가진 것도 갈 곳도 없으니 살려달라고 고백했어요.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내는 천사예요. 그런 제 고백을 받아주었어요. 아내와 신혼살림을 송추에서 시작했어요. 일 마치고 구파발까지 전철 타고 가서 다시 버스 갈아타고 시골길을 한참 달리다가 집에 도착할 때쯤 전화를 해요. 그러면 아내가 항상 버스정류장까지 뛰어나오는데, 버스 차창으로 그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요.
우린 거의 24시간 붙어 있어요. 촬영 다닐 때도 꼭 함께 가는데, 한 번은 겨울에 제가 촬영하는 동안 밖에서 덜덜 떨고 있더라고요. 차에서 히터 켜고 있으라니까, 남편이 추운 데서 일하고 있는데 어떻게 혼자 따뜻한 곳에 있냐고 하더라고요. 아침에 눈을 뜨면 세면대에 치약 짜놓고, 씻고 나오면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줘요. 어린 시절 엄마 품을 느끼지 못하고 자란 저에게 아내는 엄마나 다름없어요.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고 얇은 귀가 또 팔랑거리는 바람에 두어 번 더 사기를 당했어요. 아내가 2~3년간 꼬깃꼬깃 모은 3~4천만 원 되는 돈을 홀랑 날렸죠.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는데, 아내가 “우리 교회 나갑시다” 하더라고요. 안성에 있는 교회에 다니다가 5년 전부터 선한목자교회에 출석하고 있어요. 그곳에서 다시 세례 받고, 처음 믿음 생활하는 사람들처럼 착실하고 신실하게 예배드리고 있어요.
새로운 인생 시작!
작년에 아내가 연극 〈행복전도사 박달재〉의 극본을 쓰고 제가 배우로 출연했어요. 저의 옛날이야기에 어머니 이야기, 아내 이야기를 함께 엮은 작품인데, 대학로에서 반응이 좋았어요. 앞으로도 아내와 함께 만든 작품을 무대에 올릴 수 있다면 좋겠어요. 아내와 함께 전시회도 가질 계획이에요. 아내는 서양화를, 저는 한국화를 그리고 있는데 제가 1년가량 수채화를 더 섭렵해서 한국화에 접목해 보려고 해요. 그래서 아내 그림과 함께 전시회를 하고 그곳에서 퍼포먼스로 모노드라마를 꾸며 보면 어떨까 계획하고 있어요.
주님께서 나로 하여금 무대에서 열정을 불사를 수 있도록 달란트를 주셨으니, 그 달란트를 통해 진정을 쏟아내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저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젠 든든한 주님 ‘빽’이 있어서 걱정 안 해요. 어떤 어려움이나 시련이 닥쳐도 이겨 나갈 힘을 주셨거든요. 이제 저는 진짜 자유를 얻었어요.

[출처] 빛과 소금 + 1개월연장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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